
생성AI 서비스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롭 라이히(Rob Reich) 스탠퍼드대 인간중심 인공지능연구소(Stanford HAI) 부소장은 “전 세계는 아직 챗GPT로 인한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 있다”고 현 상황에 대한 우려를 전한다. 산업혁명은 인류에게 수많은 일자리를 제공해 주었지만, 인공지능혁명은 대규모 일자리 소멸을 예고하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로 사라지는 일자리에 대한 대중의 공포가 커지는 가운데 조용히 발달장애인의 일자리를 챙기는 이가 있다. 발달장애인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창업을 선택한 동구밭 노순호(31) 대표다. 창업은 열에 아홉이 망하는 어려운 도전이다. 그 어려운 도전을 노순호 대표는 발달장애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덤벼들었다.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며 일반 기업들도 사회적 가치 실현에 대한 관심이 커졌지만, 동구밭은 기업의 존재 자체가 사회적 가치 실현이다. 그들이 이뤄낸 오늘의 모습은 시장을 냉정하게 진단해 비즈니스 방향을 정하고, 기술 개발에 힘써 고객의 만족을 높이는 데 집중한 결과였다. 2022년에 이룬 130억원의 매출은 “착한 기업이니 팔아주자”는 선의에 기대어서는 이뤄낼 수 없는 결과다. 사회문제 해결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뾰족한 비즈니스 전략을 더해 일궈낸 동구밭의 성과는 기업의 의미와 역할을 돌아보게 한다.
동구밭의 천연수제비누. 동구밭은 현재 OEM 매출보다 자체 브랜드 판매 매출이 더 커졌다. photo 동구밭
텃밭가꾸기에서 천연수제비누로
노순호 대표가 발달장애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13년 대학 시절 사회적 기업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였다. 시골 출신이었던 노 대표가 선택한 사업 아이템은 도시 농업이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에 비해 시골 출신인 본인이 잘할 수 있는 일이고, 도시 농업은 시골에서의 그것과는 달리 재미있어 보여서 선택하게 되었다.
주말농장에 나가 텃밭을 가꾸던 노 대표의 눈에 발달장애 청년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부모님을 따라 나온 그들은 텃밭가꾸기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였다. 성인이 된 발달장애 청년들은 친구를 사귈 기회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계기였다.
노순호 대표는 발달장애 청년과 대학생 자원봉사자를 한 팀으로 묶어 텃밭가꾸기 사업에 나섰다. 친구가 없는 발달장애 청년들의 수요가 많아 가꾸는 텃밭이 20개를 넘어섰고, 텃밭가꾸기에 참여하는 장애 청년들의 수가 100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발달장애 청년들에게 받는 참가비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금만으로는 사업을 지속할 수 없었다. 2014년 팀을 꾸려 시작한 텃밭가꾸기 사업이 시간이 흘러 2016년 말 무렵이 되자, 그와 함께하던 동료들이 하나둘 떠나가게 되었다.
동료들을 떠나보내고 몸부림치며 수없이 되뇐 말이다. 제품을 만들기 위해 시장을 분석하고, 가능성을 검토하던 그가 최종적으로 선정한 사업 아이템은 천연수제비누였다. 천연수제비누는 제조업을 준비하며 정해두었던 아래의 조건을 충족했다.
첫째, 발달장애인도 쉽게 만들 수 있는 제품이어야 한다.
둘째, 생산 비용이 적게 들어야 한다.
셋째, 텃밭 농작물보다 유통기한이 길어야 한다.
넷째, 해당 분야에서 1등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천연수제비누의 사업화 가능성을 확인한 후 제조업에 뛰어든 2017년은 그야말로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직원들이 대구, 강릉, 파주 등 전국으로 흩어져 기술을 배운 후 본사에 모여 제품을 개발했다. 그 과정에서 버려진 비누만 20만개에 달했고, “될 때까지 해보자”고 독기를 품고 달려든 동료들이 있었기에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렇게 2017년 3월 말 ‘언니의 파우치’에 첫 납품을 완료한 후 미친듯이 거래처 발굴에 나섰다.
동구밭에는 너무나 치열하고 급박했던 그 시절을 잘 버텨낼 수 있도록 도와준 지원군들이 있었다. 소셜벤처 투자사 소풍벤처스와 소셜벤처 베어베터의 김정호·이진희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투자하고 성장과정을 지원하는 소풍벤처스는 투자금 지원과 함께 텃밭가꾸기 사업에서 천연수제비누 제조 기업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전환하는 과정을 도왔다. 발달장애인을 고용해 생산한 제품을 기업 대상으로 판매하는 베어베터의 김정호·이진희 대표는 동구밭이 사업을 준비할 수 있도록 사무실 공간을 제공하고, 발달장애인 고용에 필요한 살아있는 조언들을 해주었다. 동구밭이 일궈가는 가치를 알아주는 투자자, 선배 기업가들의 존재가 새로운 가능성의 토양이 되어준 것이다.
동구밭 노순호 대표 photo 동구밭
자동화 대신 규모의 경제로 일군 130억 매출
동구밭이 천연수제비누를 생산하기로 한 것은 “지금이 들어갈 시장 타이밍”이라는 시기적 판단에서가 아니었다. 동구밭에서 일하는 발달장애 사원들이 잘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선택한 것이었다. 하늘도 그들의 진심을 알아주어서였을까? 동구밭이 천연비누 시장에 진입하던 무렵, 화학제품에 대한 거부감이 확산하면서 친환경 제품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어났다. 천연수제비누 생산은 비교적 기술의 진입장벽이 높지 않고, 초기 비용도 저렴한 편이라 영세한 사업자들이 많은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대기업이 나서기에는 시장 규모가 크지 않고, 수작업 공정이 많아 실익이 없는 시장이라 위탁생산을 맡기는 게 더 나은 선택이었다. 위탁생산을 맡기고 싶은 기업 입장에서는 대규모 물량을 믿고 맡길 만한 제조사를 찾기 어려웠다. 그러한 시장 상황 속에서 동구밭은 믿고 맡길 수 있는 제조사로 떠오르게 되었다. 동구밭은 주문자위탁생산(OEM)과 제조업자개발생산(ODM) 방식으로 안정적인 판매처를 확보해 나갔다. 그들의 열심과 실력을 알아본 화장품 회사, 호텔, 리조트, 유통기업 등이 고객군으로 늘어났다.
동구밭이 직원의 절반을 발달장애인으로 채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모든 발달장애인에게 일할 기회가 열려 있는 것은 아니다. 동구밭은 발달장애인을 고용할 때 혼자서 신변처리가 가능한지, 독립적인 출퇴근이 가능한지의 기준을 두어 채용을 결정한다. 동구밭도 지속가능성을 스스로 지켜내야 하는 기업이기에 정해둔 최소한의 기준이다. 수작업으로 진행되는 동구밭의 천연비누 제조 과정은 발달장애인들에게는 약간의 훈련만으로 해낼 수 있고, 오래할 수 있는 일자리에 해당한다. 그러니 일하는 직원들의 이탈도 거의 없는 상황이라 동구밭이 선택한 천연수제비누 제조 사업은 직원의 절반이 발달장애인에 해당하는 동구밭에 강점으로 작용한다.
동구밭이 투자 제안 거절한 이유
동구밭이 주문자생산 방식을 넘어서 자체 제품을 만들게 된 계기는 실력과 매출을 쌓아가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찾아왔다. 기업 고객과 미팅을 하던 노순호 대표는 샘플을 제공하려고 보니, 타 회사의 로고가 박혀 있는 제품만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언젠가는 우리 제품을 팔겠다”고 했던 다짐을 꺼낼 시기가 다가온 것이었다.
동구밭이라는 자체 브랜드를 달고 만든 제품 중에 폭발적 반응을 얻게 된 것이 ‘설거지바’였다. 희석해서 사용해야 하는 액체형 세제는 제대로 씻기지 않고 그릇에 남아 인체에 쌓이게 된다. 때마침 미세플라스틱에 대한 공포가 미디어를 통해 전해지면서 동구밭의 워싱바는 친환경 제품이라 안전하다는 반응을 얻으며 강남 엄마들을 중심으로 폭발적 인기를 얻게 되었다. 동구밭은 현재 샴푸바, 린스바 등으로 상품군을 확장하며 자사 브랜드 제품 매출을 늘려가고 있다. 동구밭은 현재 OEM 매출보다 자체 브랜드 판매 매출이 더 커졌다.
2019년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후 인체에 직접 사용하는 제품의 안전관리가 강화되면서 비누가 공산품이 아닌 화장품으로 분류된 것도 동구밭에는 기회로 작용했다. 새롭게 시행된 분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생산업체는 제조시설뿐 아니라 품질관리에도 엄격한 기준을 지켜야 한다. 이러한 변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대규모 투자가 필요해 영세한 업체들의 경우는 사업을 포기하기도 했다. 동구밭 역시 이러한 기준에 맞춰가는 과정이 어려웠지만, 프랑스 이브비건 인증을 받는 등 시장의 신뢰를 얻는 기회로 만들어가고 있다. 천연비누 제품이라는 단일 항목만을 놓고 보면, 시중에서 팔리는 제품 중 절반이 동구밭에서 제조한 제품들이다.
시장의 빈틈을 찔러 수요를 확보해낸 동구밭은 2017년 6억원의 매출을 시작으로 2020년에는 55억원, 2022년에는 130억원의 매출을 이뤘다. 천연수제비누 제조사로는 보기 드문 높은 매출과 영업이익률로 투자자들의 러브콜도 많았다. 하지만 동구밭은 오랜 시간 깊은 고민을 거듭한 끝에 투자 제안을 거절하기로 결정했다. 투자를 받아 투자자들에게 재무적 이익을 안겨주는 것보다 동구밭에서 일하는 우리가 즐겁고 행복한 게 더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투자금이라는 지렛대로 로켓성장을 하고, 창업자가 거액의 엑시트(자금 회수)를 하는 것이 스타트업의 성공기준으로 작용하는 가운데, 발달장애인 고용을 위해 기업을 운영하고, 직원들의 행복이 투자자의 이익보다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동구밭 노순호 대표의 결정은 기업의 의미와 역할을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출처 : 주간조선(http://weekly.chosun.com)
생성AI 서비스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롭 라이히(Rob Reich) 스탠퍼드대 인간중심 인공지능연구소(Stanford HAI) 부소장은 “전 세계는 아직 챗GPT로 인한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 있다”고 현 상황에 대한 우려를 전한다. 산업혁명은 인류에게 수많은 일자리를 제공해 주었지만, 인공지능혁명은 대규모 일자리 소멸을 예고하고 있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달로 사라지는 일자리에 대한 대중의 공포가 커지는 가운데 조용히 발달장애인의 일자리를 챙기는 이가 있다. 발달장애인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창업을 선택한 동구밭 노순호(31) 대표다. 창업은 열에 아홉이 망하는 어려운 도전이다. 그 어려운 도전을 노순호 대표는 발달장애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덤벼들었다.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가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며 일반 기업들도 사회적 가치 실현에 대한 관심이 커졌지만, 동구밭은 기업의 존재 자체가 사회적 가치 실현이다. 그들이 이뤄낸 오늘의 모습은 시장을 냉정하게 진단해 비즈니스 방향을 정하고, 기술 개발에 힘써 고객의 만족을 높이는 데 집중한 결과였다. 2022년에 이룬 130억원의 매출은 “착한 기업이니 팔아주자”는 선의에 기대어서는 이뤄낼 수 없는 결과다. 사회문제 해결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뾰족한 비즈니스 전략을 더해 일궈낸 동구밭의 성과는 기업의 의미와 역할을 돌아보게 한다.
동구밭의 천연수제비누. 동구밭은 현재 OEM 매출보다 자체 브랜드 판매 매출이 더 커졌다. photo 동구밭
텃밭가꾸기에서 천연수제비누로
노순호 대표가 발달장애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13년 대학 시절 사회적 기업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였다. 시골 출신이었던 노 대표가 선택한 사업 아이템은 도시 농업이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친구들에 비해 시골 출신인 본인이 잘할 수 있는 일이고, 도시 농업은 시골에서의 그것과는 달리 재미있어 보여서 선택하게 되었다.
주말농장에 나가 텃밭을 가꾸던 노 대표의 눈에 발달장애 청년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부모님을 따라 나온 그들은 텃밭가꾸기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였다. 성인이 된 발달장애 청년들은 친구를 사귈 기회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계기였다.
노순호 대표는 발달장애 청년과 대학생 자원봉사자를 한 팀으로 묶어 텃밭가꾸기 사업에 나섰다. 친구가 없는 발달장애 청년들의 수요가 많아 가꾸는 텃밭이 20개를 넘어섰고, 텃밭가꾸기에 참여하는 장애 청년들의 수가 100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발달장애 청년들에게 받는 참가비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금만으로는 사업을 지속할 수 없었다. 2014년 팀을 꾸려 시작한 텃밭가꾸기 사업이 시간이 흘러 2016년 말 무렵이 되자, 그와 함께하던 동료들이 하나둘 떠나가게 되었다.
동료들을 떠나보내고 몸부림치며 수없이 되뇐 말이다. 제품을 만들기 위해 시장을 분석하고, 가능성을 검토하던 그가 최종적으로 선정한 사업 아이템은 천연수제비누였다. 천연수제비누는 제조업을 준비하며 정해두었던 아래의 조건을 충족했다.
첫째, 발달장애인도 쉽게 만들 수 있는 제품이어야 한다.
둘째, 생산 비용이 적게 들어야 한다.
셋째, 텃밭 농작물보다 유통기한이 길어야 한다.
넷째, 해당 분야에서 1등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천연수제비누의 사업화 가능성을 확인한 후 제조업에 뛰어든 2017년은 그야말로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직원들이 대구, 강릉, 파주 등 전국으로 흩어져 기술을 배운 후 본사에 모여 제품을 개발했다. 그 과정에서 버려진 비누만 20만개에 달했고, “될 때까지 해보자”고 독기를 품고 달려든 동료들이 있었기에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렇게 2017년 3월 말 ‘언니의 파우치’에 첫 납품을 완료한 후 미친듯이 거래처 발굴에 나섰다.
동구밭에는 너무나 치열하고 급박했던 그 시절을 잘 버텨낼 수 있도록 도와준 지원군들이 있었다. 소셜벤처 투자사 소풍벤처스와 소셜벤처 베어베터의 김정호·이진희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투자하고 성장과정을 지원하는 소풍벤처스는 투자금 지원과 함께 텃밭가꾸기 사업에서 천연수제비누 제조 기업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전환하는 과정을 도왔다. 발달장애인을 고용해 생산한 제품을 기업 대상으로 판매하는 베어베터의 김정호·이진희 대표는 동구밭이 사업을 준비할 수 있도록 사무실 공간을 제공하고, 발달장애인 고용에 필요한 살아있는 조언들을 해주었다. 동구밭이 일궈가는 가치를 알아주는 투자자, 선배 기업가들의 존재가 새로운 가능성의 토양이 되어준 것이다.
동구밭 노순호 대표 photo 동구밭
자동화 대신 규모의 경제로 일군 130억 매출
동구밭이 천연수제비누를 생산하기로 한 것은 “지금이 들어갈 시장 타이밍”이라는 시기적 판단에서가 아니었다. 동구밭에서 일하는 발달장애 사원들이 잘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선택한 것이었다. 하늘도 그들의 진심을 알아주어서였을까? 동구밭이 천연비누 시장에 진입하던 무렵, 화학제품에 대한 거부감이 확산하면서 친환경 제품을 찾는 소비자들이 늘어났다. 천연수제비누 생산은 비교적 기술의 진입장벽이 높지 않고, 초기 비용도 저렴한 편이라 영세한 사업자들이 많은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대기업이 나서기에는 시장 규모가 크지 않고, 수작업 공정이 많아 실익이 없는 시장이라 위탁생산을 맡기는 게 더 나은 선택이었다. 위탁생산을 맡기고 싶은 기업 입장에서는 대규모 물량을 믿고 맡길 만한 제조사를 찾기 어려웠다. 그러한 시장 상황 속에서 동구밭은 믿고 맡길 수 있는 제조사로 떠오르게 되었다. 동구밭은 주문자위탁생산(OEM)과 제조업자개발생산(ODM) 방식으로 안정적인 판매처를 확보해 나갔다. 그들의 열심과 실력을 알아본 화장품 회사, 호텔, 리조트, 유통기업 등이 고객군으로 늘어났다.
동구밭이 직원의 절반을 발달장애인으로 채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모든 발달장애인에게 일할 기회가 열려 있는 것은 아니다. 동구밭은 발달장애인을 고용할 때 혼자서 신변처리가 가능한지, 독립적인 출퇴근이 가능한지의 기준을 두어 채용을 결정한다. 동구밭도 지속가능성을 스스로 지켜내야 하는 기업이기에 정해둔 최소한의 기준이다. 수작업으로 진행되는 동구밭의 천연비누 제조 과정은 발달장애인들에게는 약간의 훈련만으로 해낼 수 있고, 오래할 수 있는 일자리에 해당한다. 그러니 일하는 직원들의 이탈도 거의 없는 상황이라 동구밭이 선택한 천연수제비누 제조 사업은 직원의 절반이 발달장애인에 해당하는 동구밭에 강점으로 작용한다.
동구밭이 투자 제안 거절한 이유
동구밭이 주문자생산 방식을 넘어서 자체 제품을 만들게 된 계기는 실력과 매출을 쌓아가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찾아왔다. 기업 고객과 미팅을 하던 노순호 대표는 샘플을 제공하려고 보니, 타 회사의 로고가 박혀 있는 제품만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언젠가는 우리 제품을 팔겠다”고 했던 다짐을 꺼낼 시기가 다가온 것이었다.
동구밭이라는 자체 브랜드를 달고 만든 제품 중에 폭발적 반응을 얻게 된 것이 ‘설거지바’였다. 희석해서 사용해야 하는 액체형 세제는 제대로 씻기지 않고 그릇에 남아 인체에 쌓이게 된다. 때마침 미세플라스틱에 대한 공포가 미디어를 통해 전해지면서 동구밭의 워싱바는 친환경 제품이라 안전하다는 반응을 얻으며 강남 엄마들을 중심으로 폭발적 인기를 얻게 되었다. 동구밭은 현재 샴푸바, 린스바 등으로 상품군을 확장하며 자사 브랜드 제품 매출을 늘려가고 있다. 동구밭은 현재 OEM 매출보다 자체 브랜드 판매 매출이 더 커졌다.
2019년 가습기 살균제 사건 이후 인체에 직접 사용하는 제품의 안전관리가 강화되면서 비누가 공산품이 아닌 화장품으로 분류된 것도 동구밭에는 기회로 작용했다. 새롭게 시행된 분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생산업체는 제조시설뿐 아니라 품질관리에도 엄격한 기준을 지켜야 한다. 이러한 변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대규모 투자가 필요해 영세한 업체들의 경우는 사업을 포기하기도 했다. 동구밭 역시 이러한 기준에 맞춰가는 과정이 어려웠지만, 프랑스 이브비건 인증을 받는 등 시장의 신뢰를 얻는 기회로 만들어가고 있다. 천연비누 제품이라는 단일 항목만을 놓고 보면, 시중에서 팔리는 제품 중 절반이 동구밭에서 제조한 제품들이다.
시장의 빈틈을 찔러 수요를 확보해낸 동구밭은 2017년 6억원의 매출을 시작으로 2020년에는 55억원, 2022년에는 130억원의 매출을 이뤘다. 천연수제비누 제조사로는 보기 드문 높은 매출과 영업이익률로 투자자들의 러브콜도 많았다. 하지만 동구밭은 오랜 시간 깊은 고민을 거듭한 끝에 투자 제안을 거절하기로 결정했다. 투자를 받아 투자자들에게 재무적 이익을 안겨주는 것보다 동구밭에서 일하는 우리가 즐겁고 행복한 게 더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투자금이라는 지렛대로 로켓성장을 하고, 창업자가 거액의 엑시트(자금 회수)를 하는 것이 스타트업의 성공기준으로 작용하는 가운데, 발달장애인 고용을 위해 기업을 운영하고, 직원들의 행복이 투자자의 이익보다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동구밭 노순호 대표의 결정은 기업의 의미와 역할을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출처 : 주간조선(http://weekly.chosun.com)